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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가 있기 전까지는 사실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무서워 주님을 떠나거나 모른다고 배반까지 했던 자들이 바로 삼년동안이나 주님과 함께 동거 동락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 성령께서 임하시게 되자 복음의 폭발적인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
우리의 신앙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힘을 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외형적인 모습은 갖추었다 할지라도 동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자기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동력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혼자 역사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눅24:49이 행1:4-5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성령님은 말씀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운동은 말씀운동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관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성령을 향한 약속
눅24:49과 행1:4-5은 세 가지의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령이 임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엎드리는 일입니다. 둘째,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을 믿고 기다릴 것을 말합니다. 그냥 기다림이 아닙니다. 준비하고 사모하며 기다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성령님은 임하시게 되었고 그들은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행2:1-4).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내기를 원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 여지없이 깨뜨리셨지만(창11장), 성령께서 임하시게 되었을 때 이들은 언어의 소통을 이루게 되고 비전이 하나 되고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력으로 이들은 복음의 용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 계속되는 성령의 역사
이런 성령의 역사는 그 당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위기적인 상황이 올 때마다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서는 19세기 무디의 부흥운동으로, 영국의 웨일즈 성령운동과 인도의 카시아 부흥운동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평양의 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부흥운동이 재현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귀한 역사를 허락하십니다. 휴가기간을 맞이하여 각 부서에서 각종 여름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행사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이루는 동기가 되기가 되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민족 가운데 영적각성 운동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