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한꺼번에 품꾼들을 선발해 일을 시키지 않고 몇 차례로 나누어 품꾼을 뽑아 일을 시켰습니다. 심지어는 일이 끝나게 되는 몇 시간을 앞두고서도 품꾼을 뽑아 일을 시킵니다. 그러나 품삯은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여기에 먼저 온 품꾼들이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 비유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먼저 온 사람들’에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불만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그렇다면 먼저 온 자들이 잘못은 무엇입니까?
▉ 공로의식
본문 10절에 보면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늦게 온 자들보다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런 공로 의식, 채권자 의식보다도 더 비신앙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채무자가 아니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런 공로의식이 많을수록 더 괴로워집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뭔가를 해냈다고 하는 공로의식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나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입니다.
▉ 흥정의식
먼저 온 이들은 자신들에게 허락될 더 큰 보상을 기대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단순히 어떤 보상만이 동기가 되어 주님을 섬겼다면 이건 분명히 일하는 동기가 변질된 것입니다. 먼저 온 사람들, 먼저 믿은 사람들은 이런 동기의 변질을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과 처음 만났을 때, 일할 수 없으면 굶어야 하는데, 써주신 것에 기뻐하고 감사했던 처음의 마음이 끝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 비교의식
먼저 온 사람들은 주인의 은혜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 나중 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자신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남과 비교하다가 불행에 빠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분량대로 충성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비교의식보다 오히려 동역 의식이 더 중요합니다. 같은 주인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더 연약한 이들이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옹졸함, 사랑의 왜소함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 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닙니다. 조직이나 기업은 경쟁하고 비교할 수밖에 없지만 교회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뒤늦게 온 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위치에 있음을 알고 우리 교회가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천국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