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나음을 받은 열 명의 나병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나병이라면 서서히 죽어가는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여길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격리됩니다. 어느 동굴 같은 데서 떼 지어 모여 살다가 식량이 부족하면 동네로 내려와 식량을 구하게 되는데 그때는 반드시 입을 가리고 부정하다는 소리를 지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들은 주님을 만났고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셨고 그들은 그저 믿고 가는 도중에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다 제 길로 가고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이 주님께 나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 자발적인 감사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감사는 의무나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주님의 마음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감사하지 않은 이유는 나병에서 치유를 받은 후에 너무 기쁜 나머지 감사의 기회를 놓친 것이거나, 아니면 그 치유의 역사를 저절로 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낫게 해 주신 주님보다 과거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나 사랑하던 식구들을 먼저 찾아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감사는 삶의 동기이다
하지만 이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이 추한 모습이라도 우선 먼저 주님께 나아와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되고 평안한 데서 감사가 우러나오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감사가 나옵니다. 깨달음이 없이는 감사가 없습니다. 고통이 없이는 깨달음 또한 없습니다. 깨달음의 깊은 세계에서 감사할 때 행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신앙적 관계 속에서만이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사건의 결과가 아닙니다. 감사는 삶의 동기입니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행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곳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 감사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축복이 이 감사한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육신의 회복과 아울러 영혼의 구원을 확증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은혜, 그리고 은혜로 은혜 되게 하는 은혜, 그리고 범사에 형통한 은혜,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