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활이 있기까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죄하심에도 이런 무서운 고통을 당하신 이유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 저주의 십자가가 이제 우리에게는 구원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현실 가운데는 여전히 고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헛고생일 수밖에 없지만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도의 고난에는 수동적 고난과 능동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 수동적 고난
수동적 고난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고난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구레네 시몬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1km 남짓한 거리를 예수님께서 더 이상 가기 힘들어 하실 때 군병들이 억지고 구레네 사람에게 대신 지라고 시켰습니다. 비록 억지로 진 십자가였으나 그 후 구레네 시몬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의 흔적은 아들들(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을 통해 나타납니다(막15:21). 그리고 그의 아내도 사도 바울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언급되는 것을 봅니다(롬16:13). 그의 변화가 온 가족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억지로 진 십가가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가정에 구원의 귀한 역사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 능동적 고난
능동적 고난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욕망과 안일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을 능동적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고난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당한 고난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원해서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고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주님 때문에 하겠다는 결단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목적을 정하고 살아가되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 건강, 재능을 가지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는 십자가보다 더 큰 축복과 영광을 우리 위해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남은 생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시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