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은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에녹과 함께 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했다기보다 하나님께서 에녹과 함께 하셨다는 말이 더 적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하나님과 멀리 하기를 원하고 우리 마음대로 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곁에 두시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에녹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만드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에녹과 동행하셨습니다.
사람은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에녹이 그 시대의 예언자로 살아갔던 것은 하나님께서 에녹이 곁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당신의 뜻을 계속해서 알리시며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실 때 우리는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경말씀으로, 기도로,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장차 다가올 감추어진 축복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심판을 경고함으로 에녹과 동행하셨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므두셀라’란 이름은 “그가 죽으면 망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에녹은 아들의 출산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내가 믿고 있는 복음 속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우리가 이 땅에서도 당신의 손을 붙잡고 동행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에녹을 격려하며 동행하셨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큰 격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증거로 받는 것입니다. 그 동행은 고통의 자리에도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먼저 고난과 고초를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멸망의 길을 가려는 우리를 쳐서 때로는 아프게도 하시지만, 동행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주님과 동행하도록 이끄십니다. 영적 장애인 같은 우리를 끝까지 참으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드리십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