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38절 “그 때에”란 말, 이 한마디 속에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를 귀신의 왕이라 몰아붙이던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표적에 대한 요구
사실 마태복음 8장 이후에 우리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럴 때는 귀신의 왕이라 욕하다가 그들은 이렇게 또 표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나 채워주고 감동을 주려는 목적으로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이적을 요구할 때에 우리 주님은 결코 거기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의 표현으로 당신의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이적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사모하고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표현으로 오늘도 특별한 역사를 행하여 주십니다.
■ 요나의 표적
이어서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동안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장 위대한 기적이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토록 위대한 표적이 되신 예수님을 거역하게 되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과 남방여왕 스바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정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의 성의 없는 설교를 한번 듣고서도 회개했고, 솔로몬의 설교를 한번 듣기 위해서 멀고 먼 길을 여행했다. 너희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어떤 몸부림으로 살아가느냐.” 이들은 우리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메시지에 응답했던 자들이었습니다.
■ 빈집의 비유
오늘 본문은 빈집 비유로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표리부동하게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며 예수님께서는 빈집 비유를 통하여 “너희들은 도덕적인 삶을 통해 너희 인생이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지만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깨끗하길 바라던 그곳이 이렇게 귀신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모독하고 주님을 거역한 사람들의 미래를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주인 되어 사십니까? 내 마음이 비어있다고 한다면 세상에서 내세울만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거기는 악한 영의 처소로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